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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026 목표달성 장학생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양우빈
2026.04.13 ㅣ 1066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국어국문학,문예창작학
양우빈
편입구분:학사
전적대학/학과: 학점은행제

편입준비시기: 2025년 01월
수강캠퍼스: 김플강남 인문관
도망이 아닌 도전으로: 수차례 좌절을 넘어 편입에 이르기까지 내 손으로 번 기회, 내 노력으로 만든 결과

 

 

편입을 준비하게 된 이유

스무 살, 저는 입시에 실패했습니다. 그 좌절을 마주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고 저는 도전보다는 군대로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전역 후에는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보고 요리 유학이라는 다른 길도 생각하며 삶의 방향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끝까지 붙잡지 못한 채 또다시 수능에 도전했고, 시험 당일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었습니다. 결국 좌절감에 빠진 저를 마주하기가 싫어서 24살에 저는 무작정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주 5일, 하루 9시간씩 홀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했고, 돈도 모였습니다. 하지만 퇴근길 버스 안에서 느끼던 감정은 달랐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제 안은 점점 비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채 하루를 반복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버스에서 우연히 휴대폰 기사 속 수능 합격자 수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성취감에 빠져 행복해하는 학생의 모습과 제 주변에 대학 생활을 즐기며 성장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도 갑자기 떠오르더니, 부러움과 좌절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나는 왜 다시 도전하지 않는 걸까.’ 물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처음 드는 것도 아니었고, 수능으로 크게 실패했던 저에게 또다시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편입을 선택했습니다. 남의 기대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입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1년 동안 모은 돈은 제 도전의 자본이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 대부분을 공부에 쏟았습니다. 이전과 달랐던 점은 태도였습니다. 실패를 피하려 하지 않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채워나갔습니다. 25년부터 1월부터 26년 1월까지 김영편입 인문계 관에서 가장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며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정말 많지만, 이번만큼은 중간에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도망 대신 책임을 선택했고, 결국 저는 목표했던 동국대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편입은 단순한 학벌 상승이 아니라, 반복된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명이었습니다. 한때 저조차도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편입 시작 시점의 나의 베이스

고등학교 시절 제 내신은 2.1 등급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성적이었고, 주변에서도 “기본은 되어 있다”라는 평가받았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과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유지했습니다. 전 과목 100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던 시험에서도 유독 영어는 88점을 받으며 아쉬움을 남긴 경험이 있습니다. 큰 차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12점은 제게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는 점수였습니다. 저는 영어를 ‘못하는 과목’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취약한 과목’이었습니다. 그 후 수능에 다시 도전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시험에서 영어 듣기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4등급으로 떨어졌습니다. 단 한 문제였지만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 실력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편입을 준비하며 그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첫 위클리 시험에서 40점을 받았습니다. 순위를 위에서 찾는 것보다 아래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다시 한번 ‘나는 공부와 맞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성적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베이스가 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실제 편입 영어 앞에서는 그 기반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베이스의 유무가 아니라, 잘못된 공부 습관이었습니다. 저는 이해 중심의 공부에는 익숙했지만, 반복과 암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어휘와 문법처럼 단순하지만, 반드시 축적이 필요한 영역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 정도는 감으로 풀 수 있겠지’라는 태도가 쌓이며, 기초는 단단해지지 않았습니다. 어휘 암기는 귀찮았고, 문법 정리는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점수는 쉽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노력은 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정체될 때마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편입 준비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베이스가 있다는 말은 출발선이 조금 앞에 있을 뿐, 방향이 틀리면 결국 더 멀리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어설픈 자신감과 익숙한 방식에 기대는 태도가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학습 노하우(영어)

어휘는 저에게 가장 부담이 큰 영역이었습니다. 암기가 힘들어 그림 연상법을 활용해 보기도 했고, 별도의 정리 노트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외워보기도 했습니다. 어원 중심 정리, 유사 단어 묶기, 다양한 암기법도 시도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방법을 경험하며 깨달은 점은 분명했습니다. 어휘는 요령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의 문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확보해 여러 번 반복해 보며 단어를 ‘완벽히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루에 많은 양을 무리하게 외우기보다, 일정 분량을 꾸준히 회독하며 기억을 강화했습니다. 암기는 영어 학습의 기초라는 점을 인정한 순간부터 학습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 어휘는 부담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영역이 되었고, 점수도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문법 역시 비슷한 과정이었습니다. 수업에서 제공되는 자료는 충분히 체계적이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제 것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반 이론 수업을 들으며 제 방식대로 단권화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헷갈렸던 개념과 자주 다른 유형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며 새로 배운 내용은 계속 추가하며 노트를 확장했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회독하며 개념을 점검했습니다. 논리 영역은 처음에 독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영역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독해가 내용 이해에 초점을 둔다면, 논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사고 훈련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지문을 읽을 때 주장과 근거를 구분하고, 연결어와 신호어에 주목하며 글의 흐름을 구조화했습니다. 특히 오답 분석에 집중해 왜 틀렸는지를 점검했고, 감이 아닌 사고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논리는 점차 불안한 과목에서 예측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었습니다. 독해에서는 ‘모든 문장을 다 이해해야 한다’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 전환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내용을 읽으려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고, 앞부분이 쉽게 휘발되었습니다. 이후 중심 문장을 찾고 문단의 역할을 파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읽는 연습을 하다 보니 독해는 감에 의존하는 영역에서 분석하는 영역으로 바뀌었고, 점수 역시 점차 안정되었습니다.

학습 노하우(수학)

수학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면접 노하우

학사편입이어서 면접은 따로 있지않았습니다

자기소개서 준비방법

자기소개서를 쓰는 대학교는 1단계 합격을 받지 못해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시작 시기 노하우

편입을 결심했을 때의 저는 사실 자신감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고등학교 내신은 2.1이었지만 영어는 늘 발목을 잡는 과목이었고, 수능을 다시 준비했을 때도 듣기 한 문제 차이로 4등급으로 떨어졌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영어가 약한 사람”이라고 규정한 채 시작했습니다 첫 위클리 시험에서 40점을 받았을 때는 충격감과 동시에 확인에 가까웠습니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남들은 베이스가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오히려 그 어중간한 경험이 독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해는 하려 하고, 반복은 피했습니다. 특히 어휘는 암기가 싫다는 이유로 그림 연상, 정리 노트 꾸미기, 암기법 찾기 등 겉도는 방법만 시도했습니다. 공부한 시간에 비해 실질적인 축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시기의 저는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노력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틀린 문제를 분석하기보다 “다음엔 맞겠지”라며 넘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한다기보다 공부하는 분위기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였지만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 퇴근길 버스에서 읽었던 합격 수기와 대학생활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이 저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도 도망치면, 저는 앞으로도 도전 앞에서 물러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성적보다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고, 정해둔 분량을 감정과 상관없이 채우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점수는 여전히 낮았지만, 최소한 도망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작 시기의 저는 실력은 부족했지만, 비로소 자세를 배우고 있던 단계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남과 비교하는 태도로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을 피하셔야 합니다. 결국 이 시기를 돌아 볼때 가장 중요한건 자신을 믿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 나는 안될거야 , 해도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얼른 털어내고 묵묵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생각보다 결실은 멀리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작은 하루하루 노력이 모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여름방학 노하우

여름은 제게 가장 뼈아픈 성장의 시기였습니다. 6월 모의고사에서 예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전국 100등 안에 들었다는 결과를 확인했을 때, 솔직히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50등까지도 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었고, 드디어 저도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자신감은 어느 순간 자만심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공부를 ‘더 많이’ 하면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감정이 앞섰습니다. 냉정한 전략 대신, 흥분한 열정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원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가장 늦게까지 남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줄였고, 쉬는 시간을 죄책감처럼 여겼습니다. “남들보다 더해야 유지할 수 있다”라는 강박이 생겼습니다. 잘 달리고 있던 기차에 연료를 채워야 할 시점에, 저는 오히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버린 셈이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다음 시험에서 40점 가까이 떨어지면서 충격과 동시에 컨디션은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병원에서 수액을 맞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날씨는 더웠고, 체력은 바닥났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잠깐 반짝이었나”, “나는 원래 이 정도인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3살에 다시 준비했던 수능. 마지막 한 달 동안 무리하게 공부 시간을 늘렸고, 시험 당일 새벽 장염으로 한숨도 못 자고 시험장에 들어갔던 날.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문제를 읽으며 멍해졌던 기억. 그리고 시험이 끝난 뒤의 깊은 후회. 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못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제 몸을 무시해서 무너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부는 의지의 싸움이 아니라 관리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체력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기상 시간을 현실적으로 조정했고, 최소 6시간 이상의 수면을 확보했습니다. 식사 시간을 줄이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의도적으로 일찍 마무리했습니다. 여름은 제게 성적 상승의 시기가 아니라, ‘조절’을 배운 시기였습니다.

파이널 시기 노하우

파이널 시기는 공부 시간을 줄이더라도 집중도를 높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점수는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처럼 단기간에 치솟는 폭발적인 상승은 아니었지만, 대신 흔들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잘 나오는 날과 무너지는 날의 간극이 좁아졌고, 점수의 그래프가 요동이 아닌 완만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오래 가는 힘은 흥분이 아니라 균형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감정으로 공부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무리하게 공부량을 늘리고, 떨어지면 제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태도를 멈추려 노력했습니다. 대신 하루의 루틴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정해진 분량을 채우고, 정해진 시간에 마무리하는 것. 단순한 반복이었지만 그 리듬이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어휘는 다시 기초부터 훑었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늘리는 대신 이미 여러 번 봤지만 완전히 제 것이 되지 못한 단어들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빈칸을 줄이는 작업이었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모르면 다시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렇게 회독을 거듭하자 단어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노력으로 관리 가능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문법은 단권화 노트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문제를 풀며 틀린 유형을 표시하고, 헷갈린 개념에는 제 말로 다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노트는 점점 두꺼워졌고, 그 두께만큼 제 이해도 단단해졌습니다. 논리는 시간 배분을 체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한 문제에 집착하던 습관을 버리고, 과감히 넘겼다가 돌아오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독해는 문제 수보다 정확도를 우선하며 오독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왜 틀렸는지를 끝까지 파고들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 시기의 저는 성적을 쫓기보다 상태를 지키려 했습니다. 점수의 등락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것이 제 가치의 등락은 아니었습니다. 불안은 남아 있었지만, 예전처럼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 번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오늘도 도망치지 않았다”라는 사실이 저를 지탱했습니다.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선택이, 저를 가장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시험 직전 노하우

시험을 일주일 앞둔 시점, 저는 조용히 책상을 정리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불안에 휩싸여 새로운 자료를 찾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문제집을 또 펼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저는 더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끝까지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두꺼워진 단권화 노트, 수없이 표시가 남은 어휘 책, 오답으로 빼곡해진 독해 기록들. 그것들은 단순한 교재가 아니라 지난 시간의 증거였습니다. 매번 시험 직전의 저는 의외로 차분했습니다.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기에 마음은 계속 흔들렸습니다. “혹시 또 컨디션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마지막에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여름의 실패를 떠올렸습니다. 무리하다가 무너졌던 기억, 수능 당일 새벽 장염으로 잠도 못 자고 시험장에 들어갔던 스물셋의 제 모습. 그 기억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하자고, 결과가 아니라 상태를 지키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그래서 시험 전날 저는 늦게까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새로운 문제를 풀기보다, 그동안 정리해 온 노트를 천천히 넘겼습니다. 모르는 것을 찾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잠들기 전, 괜히 불안해 휴대폰을 붙잡고 싶어지는 순간에도 억지로 내려놓았습니다. 이번만큼은 제 몸과 마음을 믿어보자는 선택이었습니다. 편입 시험은 다른 입시 시험과 다르게 흐름이 엄청 긴 시험입니다. 한 번의 시험을 망쳤다고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동국대 합격 전에 국민대학교를 최초로 합격했던 날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제게 첫 시험이었던 국민대는 가장 못 본 시험 중의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어렵고 당황스러웠던 시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험 과정과 결과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상투적인 말이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험이 바로 편입입니다. 시험 직전의 그 감정들은 제가 다시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반복을 견디고, 불안을 관리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의고사 및 기출문제 풀이 전략

모의고사와 기출 시험은 단순히 실력을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험을 운영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반에 모의고사를 ‘점수 확인용’으로만 활용했습니다. 잘 나오면 기분이 좋았고, 떨어지면 하루 종일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모의고사의 진짜 목적은 점수가 아니라 패턴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먼저 모의고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실전과 동일한 환경 조성이었습니다. 실제 시험 시간과 똑같이 맞춰 앉았고, 중간에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쉬지 않았습니다. 긴장감까지 연습해야 실전에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간 배분은 모의고사 때 철저히 실험했습니다. 논리에서 몇 분 이상 쓰지 않기, 독해 한 지문당 목표 시간 설정하기 등 구체적인 기준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계획이 자주 무너졌지만, 기록을 남기며 조금씩 보완했습니다. 채점 이후가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틀린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맞은 문제 중 확신이 없었던 것도 함께 표시했습니다. 시험장에서 애매했던 감각은 실전에서 가장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답 정리를 할 때 단순히 해설을 읽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왜 이 선지를 골랐는가?”, “어디서 오독이 시작되었는가?”, “시간에 쫓겨 근거를 대충 잡지는 않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약점이 ‘개념 부족’인지 ‘시간 압박’인지 ‘집중력 저하’인지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기출 시험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기출은 출제자의 언어이자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풀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최소 두 번 이상 반복하며 출제 의도를 읽으려 했습니다. 특히 독해 지문은 문제를 푼 뒤 다시 글만 읽어보며 구조를 정리했습니다. 주제문이 어디였는지, 전환 표현이 어떻게 쓰였는지 표시하면서 글의 흐름을 눈에 익혔습니다. 논리는 정답 근거 문장을 정확히 표시하며 ‘왜 이 답이 유일한가’를 설명해 보는 연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의고사와 기출을 통해 저는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했습니다. 막히는 문제가 나와도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표시 후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모의고사와 기출은 제 약점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동시에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필요한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지원전략과 합격당락에 가장 중요한 것

지원전략을 세우는 과정은 또 하나의 시험과도 같았습니다. 단순히 점수에 맞춰 지원하기에는, 저는 이번 도전이 너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나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인 근거 위에서 판단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한 일은 최근 몇 년간의 모집 요강과 경쟁률, 합격자 평균 점수, 전형 방식 변화를 꼼꼼히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의 결과를 비교하며 단순 경쟁률이 아니라 실질 경쟁 강도를 보려 했고, 제 모의고사 평균 점수와 환산 점수를 대입해 현실적인 가능성을 계산했습니다. 특히 기출 성적을 냉정하게 분석했습니다. 특정 학교의 문제 유형에서 제가 강점을 보이는지, 시간 압박이 심한 학교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데이터를 쌓아 비교했습니다. 단순히 “가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 “내가 준비해 온 방식과 맞는 학교”를 찾으려 했습니다. 논리 비중이 높은 곳, 어휘 난도가 높은 곳, 독해 길이가 긴 곳 등 유형을 나누어 제 점수 흐름을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막연했던 선택지가 조금씩 선명해졌습니다. 동시에 저는 제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합격만을 목표로 하기보다, 진학 후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느꼈던 공허함, 다시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번 선택이 내 삶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학교의 커리큘럼, 전공 특성, 진로 연계 프로그램까지 찾아보며 단순한 간판이 아니라 제 미래와 맞닿은 선택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보에만 매몰되지는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의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기준을 세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보다는 공식 자료와 실제 합격자 수기를 참고했고, 제 상황에 맞는 정보만 선별했습니다. 무엇보다 학원 선생님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들었습니다. 제 점수 추이와 강약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분들이었기에, 그들의 현실적인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욕심내고 싶었던 학교에 대해 “조금 더 전략적으로 보자”라는 조언받기도 했고, 반대로 제가 불안해하던 선택에 대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라는 격려받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감정과 데이터 사이의 균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슬럼프 시기와 극복방법

제 슬럼프는 조용히 오지 않았습니다. 점수가 떨어지고, 컨디션이 무너지고, 자신을 의심하는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름, 한 번 성적이 크게 올랐다가 40점 가까이 떨어졌을 때는 ‘역시 나는 반짝이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몸은 수액을 맞을 정도로 지쳐 있었고, 마음은 더 빨리 무너졌습니다. 예전 수능에서 마지막 한 달 무리하다가 시험 당일 장염으로 망가졌던 기억까지 겹치면서, 저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자책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슬럼프를 없애려 하기보다, 왜 왔는지를 먼저 인정했습니다. 저는 공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절을 못 해서 무너졌다는 사실은 받아들였습니다. 그 깨달음이 전환점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공부량을 늘리는 대신,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면 시간을 확보했고, 식사 시간을 지켰으며, 무조건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이 불안했지만, 이제는 회복을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바꾼 것은 점수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의 시험 결과가 제 전부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잘 나오면 흥분했고, 떨어지면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슬럼프를 겪으며 저는 점수를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의고사를 본 뒤에는 감정 정리보다 분석을 먼저 했습니다. 어디서 시간 배분이 무너졌는지, 어떤 유형에서 반복적으로 흔들리는지 기록했습니다. 점수를 자책의 근거가 아니라 개선의 자료로 쓰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진폭이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조금만 흔들려도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하지만 슬럼프를 지나며, 저는 피곤하면 쉬고, 집중이 안 되면 잠깐 산책하고, 대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습니다.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무너져도 돌아오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제 슬럼프 극복 방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생활을 바로 세우고, 점수를 분석하고, 기본을 반복하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에 남는 편입 관련 에피소드

7월이었습니다.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날, 저는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학원 자습실에 앉아 한양대 기출 문제 풀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 차례 무리로 컨디션이 흔들리던 시기였고, 머리는 맑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출은 도망치면 안 된다’라는 생각 하나로 문제를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채점했습니다. 점수는 35점이었습니다. 잠시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다시 계산했습니다. 그래도 35점이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동안 반복해 온 어휘, 두껍게 만들어온 문법 노트, 독해 오답 정리들이 한 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절대 못 간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특히 한양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괜히 도전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그동안의 상승은 착각이었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습실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답을 펼쳐볼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틀린 문제를 분석했겠지만, 그날은 문제지를 덮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냥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사서 벤치에 앉았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은 없었습니다. 한 입을 베어 물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눈물이 터졌습니다. 참고 있던 감정이 한 번에 무너졌습니다. “왜 또 이 길을 선택했지.”,“레스토랑에서 그냥 돈 벌던 게 나았던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쏟아졌습니다. 그날 저는 오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한양대 2020 기출문제는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제가 한양대를 못 갔다고 한다면 저 역시 할 말이 없지만 그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이 있어서 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다 큰 남자 어른이 공부 때문에 울었다 하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기억이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제 입시 경험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거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사실과 공부를 하면서 한 번쯤 오열한다는 그 수많은 합격생의 일화가 제 얘기가 되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제 마음속에 기억될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울었던 거 같긴 합니다..)

감사의 인사 / 후배 하고 싶은 말

저는 가장 고마운 분들은 우리 김영편입 강남 인문계관 Blue반 담당 교수님이었던 문법 손인숙 교수님, 논리 안토니오 교수님, 인원우 교수님, 독해 구완석 교수님과 이상민 교수님입니다. 1년 동안 반을 옮기지 않고 끝까지 제 긴 편입 레이스를 옆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매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옆에서 조용히 해결책을 조금씩 제공해 주셨던 그 고마움을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26살 때까지 작은 성공조차 느끼지 못해 힘들어하던 저를 옆에서 항상 응원 해주신 부모님에게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제 추가 합격하고 기뻐하시던 부모님을 보니 제 1년에 고생도 보상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편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솔직히 저는 처음부터 잘해서 붙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입니다. 100등 안에 들고 자만했다가 40점이 떨어졌고, 한양대 기출 35점 받고 편의점에서 김밥 먹으며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말해주고 싶습니다. 첫째, 점수에 감정 걸지 마세요. 점수는 현재 상태일 뿐, 여러분의 가치가 아닙니다. 잘 나와도 들뜨지 말고, 떨어져도 무너지지 마세요. 하루 컨디션이 점수를 좌우할 수 있지만, 꾸준함은 결국 실력을 만듭니다. 둘째, 체력은 기본입니다. 공부는 오래가는 사람이 이깁니다. 새벽에 일찍 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 날까지 무너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셋째, 어휘는 그냥 하세요. 저도 암기 싫어서 별 방법 다 써봤습니다. 그림 연상, 정리 노트 예쁘게 만들기, 암기법 찾기… 근데 결국 답은 반복이었습니다. 시간 확보해서 여러 번 보는 게 제일 빠릅니다. 화려한 방법 찾지 말고, 그냥 묵묵히 회독하세요. 나중에 독해 지문에서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옵니다. 그때 진짜 소름 돋습니다. 넷째, 오답을 미루지 마세요. 저도 35점 받고 오답 못 한 날 있습니다. 너무 자존심 상하고 힘들어서 문제지 덮어버렸습니다. 근데 결국 다시 펼쳐야 합니다. 틀린 이유를 적어보세요. 왜 이 선지를 골랐는지, 어디서 흔들렸는지. 그 과정이 쌓이면 같은 실수를 덜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도망치지만 마세요. 하루 정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울 수도 있고, 자존심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다음 날 다시 앉으면 됩니다. 저는 대단해서 붙은 게 아니라, 그냥 계속 다시 앉았습니다. 그 차이가 결국 합격까지 데려갔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편입 가장 많이 도움이 된 것

제가 편입을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도움받았던 건 단연 김영편입 종합반의 시스템이었습니다. 단순히 강의를 듣는 학원이 아니라, 제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해주고, 끝까지 밀어주는 구조였다고 느낍니다. 첫 번째는 모의고사였습니다. 솔직히 공부 하다 보면 자신을 객관화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오늘 많이 한 것 같으면 잘하는 것 같고, 몇 문제 틀리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김영편입 모의고사는 그런 감정을 걷어내고 ‘지금 나는 여기쯤 있다’라는 사실을 숫자로 보여줬습니다. 전국 단위 등수, 영역별 약점, 시간 배분 상태까지 데이터로 확인하니 막연한 불안이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실제 시험과 유사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며 시험의 결을 익힐 수 있었던 점이 컸습니다. 긴장감, 시간 압박, OMR 마킹까지 포함된 경험이 쌓이면서 실전에서의 두려움이 줄어들었습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자만을 경계하는 기준이 되었고, 떨어지면 감정이 아니라 분석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주었습니다. 객관화와 피드백, 이 두 가지가 제 실력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습실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앞둔 시기에도 자습실을 이용할 정도로 그 공간을 신뢰했습니다. 좌석 간 간격, 조용한 분위기, 철저한 관리까지 모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목표를 가진 경쟁자들과 한 공간에서 숨 쉬며 공부한다는 사실이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와 있고, 누군가는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혼자였다면 쉽게 흐트러졌을 순간들이, 그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습니다. 관리가 잘 된다는 안정감 속에서 루틴을 지킬 수 있었고, 그 루틴이 결국 점수의 안정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영편입의 파이널팩은 꼭 들어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느꼈습니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내용을 배우기보다는, 정리와 점검이 중요해집니다. 파이널팩은 독해, 논리, 어휘, 문법 각 파트를 교수님들이 맡아 기출을 압축 정리해 주고, 실제 시험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핵심 팁을 전달해 주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한 이론 정리가 아니라 “이건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판단하라”는 실전형 조언들이 쌓이면서 머릿속이 정돈되며 시험 직전 안정감까지 챙길 수 있으므로 꼭 수강하기 추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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